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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3월 31, 2009

ONE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일상을 살도록 노력했다.

물론…여러가지로 무리였지만…적극적인 자세는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 자신을 유지하고 싶었던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문득 슬퍼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어째서일까?

계절의 흐름은 완만하고, 언제까지나 같은 시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제대로 시간은 흐르고 있다.

같은 시간에 있는 것 같은 것은, 나의 기분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같은 계절에 나는 없다. 한 걸음씩, 그 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 날 찾고 있던 것과 지금 찾고 있는 것은 다르고, 보고 있는 풍경도 다르다.

모든것이 변해 간다. 머물고 있는 것은 추억뿐이다.

색이 바래지 않는 추억…
 
그 속에 몸을 던지면, 나는 괴로워진다. 격렬하게, 마음이 떨려 버린다.

너무, 슬프니까.


수많은 행복의 조각들. 구슬처럼 반짝이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

함께 모은 행복은, 함께 공유하는 행복.

어느 각도에서 봐도, 그것은 행복이다.

서로가 공유하는 행복,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모두를 잃은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깨지않으면 좋은데. 그렇지만, 깨기 때문에 꿈은 꿈이다.


꿈과 현실, 눈을 떠 보고 처음으로 그 경계선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슬프다면,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꿈을 꾸기 위해서 사람이 자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기 위해서 사람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왜 쓸수록 무른 것이 되는 걸까.

더, 강하게 될 수 없는 것인지.


여름…

무더운 여름이었다.

친구는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소중함을 느꼈다.

나 혼자만이, 먼 남해의 끝에 떠오르는 부이의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는 말없이 곁에 있어 주었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괴로울 때, 외로울 때, 나를 지탱해 줄 것 같았다.

 
가을…

일상이라는 것이, 이미 없어진 것이었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살아 있을 것인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쌀쌀하고, 나는 감기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걱정해 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것이 외로웠다.

한번 더 앞을 보자.

확실히 턱을 당기고.

언젠가, 진심으로 웃는 날이 다시 오는 그 날까지.

 
겨울…

얼어 붙은 것은 태양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그랬다.

만약, 다음 계절이 와, 밝은 태양의 빛이 비추어, 녹여 준다면.

감정과 같은 아침 이슬이 나의 마음의 빗물 받이를 따라 흘러내린다면.

매끄럽게 떨어지고, 그 아래의 현악기 줄에 닿아 준다면.

나의 마음은 녹는 것일까.

그런데, 아직 나의 마음에 빛은 닿지 않는다.

마음은 아직도 얼어붙은 채 그대로다.

 

봄…

봄이라고 하는 계절은, 이별의 계절이었다.

만남과 이별은, 같은 시기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과 헤어지고…그리고 지금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 사람을.

계절은 쭉 영원히 반복되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날이 찾아올 때까지는.

 

reference

ONE

화요일, 5월 06, 2008

새벽의 바람

굉장히 오랜만의 포스팅이다.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것이 나의 규칙이니까.. 이 블로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글들을 보고 혼란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내 블로그지만 나만 글을 쓰는 공간은 아니라서 다른 분들의 글을 내가 쓴 걸로 생각하고 읽으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생기는 탓이다. 다른 분들의 포스팅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얼마 전 구입한 '세실리아 맥' 덕분에 포스팅할 글을 쓰는 일이 무척 수월해졌다. 그렇다. 나는 내 소유의 컴퓨터에 이름을 붙이는 별난 놈이다. 전에 쓰던 조립 PC의 이름은 '뮤'였다. 컴퓨터 구입에 조립 PC 지향의 '뮤2'와 완제품 지향의 '세실리아'라는 두가지 프로젝트가 존재했었는데 '세실리아'를 선택한 것이다.
어제는 잠에서 깨어 머릿속이 맑아진 것을 느끼며 책상위의 '세실리아'를 켰다. 고요한 가운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음악과 내방의 살짝 열려진 고층 아파트의 창문으로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불어오는 차갑지만 상쾌한 새벽의 바람.. 살며시 느껴지는 청량감.. '이런 게 행복이란 기분일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되새기며 이 계절의 바람과 그 순간의 느낌을 사랑할거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좀 더 어렸을 때는 깨닫지 못한 것일까..? 이 순간의 기분을 느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슬픔이 엄습해온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공학도라 한들 결국 감정을 가진 감성의 동물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일상의 미묘한 상황들에서 오는 분위기를 느끼는 일, 좋아하는 취미활동 모두 감성적인 행위들로 언젠가는 끝나버릴 무의미한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일이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찰나의 느낌을 오래도록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도 모르는 채 감수성이 예민해진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오카리나를 꺼내서 연주해보았다. 역시 감정이 섞여있을 때의 연주는 다르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 자신의 마음을 향한 연주는 소중하다. 처음부터 그랬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배우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전에 분명히 자신을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그 후 수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이 되었다.

토요일, 11월 17, 2007

미녀


얼마 전에 본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에 나온 '자밀라'라는 여성 출연자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유는 그녀가 상당한 미모와 색기를 자랑하는 미인이기 때문인데, 검색 엔진 등에서는 그녀의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을 두고 ‘우즈벸에서는 김태희가 밭에서 호미질하고 한예슬이 과일 장수한다.’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
방송에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모니카 벨루치’를 떠올렸는데 그 건 ‘자밀라’씨의 외모가 ‘모니카 벨루치’와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니카 벨루치’의 팬이 된 것은 그녀의 외모가 가히 이상적인 미형에 거의 극한까지 근접했기 때문이었다. 유럽 여행 중에는 그런 분위기의 여성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많이 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미녀가 최고라는 편견일 가능성이 높은 성급한 일반화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우즈베키스탄도 추가해야하나?
미녀와 미녀에 열광하는 남자들을 반감어린 시선으로 보는 여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건 미녀를 좆는 남자에게 문제가 있거나 그들의 탓이 아니다. 대우주의 의지가 남자라는 존재를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자연을 탓하던지.. 아니면 그냥 받아들여라
이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에 크게 의존하는 남자가 그 반대가 되면 남자가 남자를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본다. 사실, 남자들이 시각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여성의 아름다움도 수많은 남자들이 느끼고 알아주는 것 아닌가.. 비록, 여자들은 주목받길 원하면서도 일반적인 남자들의 시선을 혐오하기도하는 모순된 감성을 지닌 존재들이긴 하지만..
원래, 남자라는 존재는 자신의 이성으로 통제하고 있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여러 여자에게 자신의 2세를 잉태시키도록 본능이란 시스템에 입력이 되어있다.
반대로, 여자는 여러 남자에게 자신의 유전 데이터를 결합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유전자와 섞어 2세에게 이어내릴 남자의 품질에 집중하도록 되어있다.
이 두 가지 본성의 상호작용으로 인간이란 종족은 ‘질과 양’ 모두에 있어 발전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같은 주에 ‘인간 극장’이란 프로에 미국 치과의사 자격증을 가진 치의학 박사로서 서울대 치대 교수에 가수, 영어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얼굴도 꽤 예쁜 여자가 35세라는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내용이 나왔다. 이 건 위의 논리에 상당히 잘 부합된다고 본다. 사실 방송에 이런 부류의 여자들이 나오는 걸 전에도 보았는데, 이들의 눈에 사회의 일반적 통념에 기인하는 자신의 가치보다 떨어지는 능력을 가진 남자는 이성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 중 나이를 먹을수록 남자의 능력에만 더더욱 치중하게 되어 결국, 노처녀가 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역시 결혼이란 건 뭣 모를 시기에 해야 하는 것..

일요일, 9월 23, 2007

미투데이

시작이란 항상 그렇다.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존재하며 다음 순간에는 모든 것이 상실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셨다.. 내가 직접 타서 마실 때는 설탕과 크림을 넣지 않고 블랙으로 마시는데 이렇게 된 것은 담배와 술 맛을 알고부터다.. 담배는 끊었고 술은 되도록 마시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만 그 후에 블랙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다. 보통 어른의 맛이네 어쩌네 하지만 역시 미묘한 맛이다. 쓴 맛을 즐긴 달까..

컵을 사용할 때 금속 컵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건 탄산음료나 맥주는 금속 컵이 아니면 입술에 닿는 감촉의 영향으로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요일, 8월 19, 2007

사랑의 릴레이

어제 그 맛있다는 고기 튀김을 먹으러 나갔다가 'Voigtländer Club'의 'aias'님과 'Eastrain'님께 멋진 물건을 사릴(사랑의 릴레이, 쉬운 한마디로 "너 가져") 받았다.

1. Ritzenhoff / Herbst . Autumn 2000


위 사진의 물건으로 이게 뭐냐면 리젠호프사 2000년 컬렉션 재떨이로 총 23명의 유명 화가 및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이루어 진 컬렉션인데 그 중에서 내가 받은 건 'Ambrogio Pozzi'의 작품이 프린트 되어 있다. 2000년 당시 오프 가격이 약 10만원, 온라인 가격이 8만원을 넘는 제품 이었음에도 금방 품절된 걸로 알고 있는데 구성은 나무케이스에 작은 책자가 같이 들어있었다. 미사용 신품을 주시다니..ㅎㄷㄷ
사진에서는 별로 안 느껴지지만 실물을 보면 투명한 느낌이 끝내준다. 마치 투명한 얼음을 보는 것과 같아서 푹푹 찌는 날씨에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재질이 크리스털 유리라고 하는 투명도가 굉장히 높은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주로 고급 와인 잔, 샹들리에(베르사이유 궁전에도 쓰임) 등에서 볼 수 있는 재질이다. 크리스털 유리는 맑고 아름답지만 조금만 잘못 다루면 아주 쉽게 깨지고 다시 붙이기도 힘든데다 붙여도 상처가 남아 또 다시 깨지기 쉬워 재미있게도 남녀 관계에 흔히 비유되곤 한다. 조심해야지..ㄷㄷ

이런 멋진 물건을 주신 'aias'님과 'Eastrain'님께 감사드립니다..ㅎㅅㅎb

금요일, 8월 03, 2007

나 자신에게..

생활에 있어서는 좀 더 관대해질 것..
자기 개발에 있어서는 더 엄격해질 것..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얽매임으로부터 해방시킬 것..

화요일, 7월 10, 2007

레고

※이 포스트의 사진은 도용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법적 책임과 블로그 주인의 응징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좀 더 큰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이 왜 이리 맘에 들지??!?

목요일, 5월 31, 2007

雜

영어 테이프를 듣느라 카세트를 쓰고 있는데 옛날엔 몰랐는데 기계적 메커니즘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4월 29, 2007

일상 #1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윗집에서 공사하다 빵꾸냈다.. 이런 건 만화에서만 나오는 건줄 알았는데..

99%


솔직히 맛있다고는 못하겠지만 오묘하게 매력적인 맛이 있어서 가끔 찾게 됩니다..
어른의 맛이죠..ㅋ
인터넷에 보면 먹고 죽을 뻔했다는 호들갑스런 오버 글들이 참 많은데 그냥 블랙커피 생각하면 되는 맛입니다.

화요일, 3월 27, 2007

LTI system theory

linear, time-invariant system


옴의 법칙(Ohm's law)

V=IR
저항에 전류가 흐르면 가해진 압력과 비례한다.

중첩의 원리(Superposition)

한 회로망에 여러 개의 전원이 동시에 존재할 때 어떤 해석 대상 소자에 미친 전기량(전류 또는 전압)의 합으로 정의 된다. 이 때 하나의 전원이 해석 대상 소자에 미친 전기량을 계산하게 되므로 사용하지 않는 전원이 전류원인 경우에는 개방, 전압원인 경우에는 단락시킨다.

RMS : Root mean square
Effective value
실효치(RMS) : 교류 신호가 어떤 부하에 흐를 때 직류 신호가 한 일의 양으로 계산된 값

요즘 생활의 핵심 키워드.. 라플라스, 푸리에, 선형 시스템(Linear system), 중첩의 원리(Superposition), 동질성의 원리(Homogeneity)

요즘, 전자 공학도답게 맨날 수학이랑 씨름하며 점점 이진수 인간이 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당분간 포스팅에 있어 글 자체에 좀 더 충실해져 보려한다.
각종 이미지, 동영상 등을 이용한 포스팅도 좋지만 그렇게만 하면 자칫 글은 얼마 없는 포스팅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포스팅에 글이 적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성도 있으니까
요즘 생활에 충실한 것 그리고 시간을 잘 쪼개서 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돈이 아무리 많아도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란 결국 시간이란 것에 속박되어 버리므로 어쩌면 사람은 주어진 시간 앞에 대략(수명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평등하다고 볼 수 있겠다.

토요일, 3월 24, 2007

맥주 야그

나는 맥주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소주는 굉장히 싫어한다.
일단 몇 번을 먹어봐도 정말 맛이 없다.
에틸알코올에 물 타먹는 맛이다.
소주를 즐기는 것과 인생의 맛을 아네 어쩌네 연관시키는 자들은 그냥 마음이 나약한 자들로 보인다.
원래 소주는 기원전 3000년경 서아시아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소주를 대한민국 전통주처럼 여기는 것 또한 거북하다.
그러나 맥주 역시 과음하면 생기는 숙취는 정말 싫다.
전에 독일 브로이 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신 건 잘한 짓 인지 모르겠다. 20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그만큼 흥분된 분위기와 직원들의 맥주 나르는 묘기(?)는 둘째 치고 그 곳 맥주의 풍부하고 깊은 맛과 매우 적은 거품 그리고 알코올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맥주보다 높은 도수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훈제 닭요리 안주랑 토할 때까지 마시고 다음날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났는데도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질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슈퍼에서 파는 맥주와 비교하자면 고등어와 참치랄까?
그때 스페인 사람들이 말을 걸어 잠시 어울리면서 그 사람들 참 밝고 명랑한 성격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제 '카스' 신제품 '레드'를 도수가 높다하여 기대하며 먹어봤는데 일반 맥주에 소주 탄 맛이다..ㅡ_ㅡ;

토요일, 3월 10, 2007

이번 학기 시간표


No pain, no gain.

이것으로 이번 학기는 시체나 다름없음
포스팅하기도 힘들겠는걸..

월요일, 1월 29, 2007

스노보드를 타고 왔습니다.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로 갔다 왔는데
네 아주 미친 듯이 타다 왔습니다.
겨울에 타는 스노보드보다 신나는 것도 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찾자면 USJ 정도?
정말 그 속도감이랑 스릴에서 오는 아드레날린은 잊을 수 없지요
갔다 와서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온 몸이 다 아프네요 유격 받은 다음날 하고 똑같습니다.

금요일, 1월 26, 2007

생일 선물로 받은 로봇




Paper Craft 즉, 종이(A4용지)로 만들어진 녀석인데 정말 멋짐
역시 선물은 정성이 느껴지는 쪽이 좋다..

목요일, 1월 11, 2007

카메라 수리 삼십 년 - 정지학

렌즈 마운트의 마지막 나사를 조이는 그의 손등에 파란 핏줄이 드러난다. 1955년 독일 베르닝 (Berning)사에서 만들어진 ‘로보트 로얄 36(Robot Royal-36).’ 세계 최초의 스프링 모터 방식의 필름 와인딩 시스템을 가졌던, 고급스럽고도 다루기 까다로웠던 랜지파인더 카메라다. 몇 십년 넘게 방치돼 꿈쩍도 않던 그 카메라가 정지학의 손에 넘어 왔다. 셔터 막, 셔터 날개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는, 그야말로 폐기상태의 그 카메라가 이제 막 그의 손에 의해 수리가 끝났다. 스프링 모터를 감는다.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찰카닥. 찰카닥. 수 십년을 넘어 그 카메라에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무엇을 보든지 눈썰미가 있어서 손으로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었고, 어떤 때 나이차이가 꽤 나는 형과 어울려 나무판이나 함석조각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할 때면 형보다 더 잘 한다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 공부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공부를 안 했다는 연유는 아니지만, 결국에 가서 택한 직업이 타고난 손재주와 눈썰미를 바탕으로 한 카메라수리 기술이었다. 그로부터 30년. 아직도 서울 충무로의 한 허술한 건물 수평 남짓한 수리실에 앉아 고장 난 카메라를 고치고 있다. 그(52)는 그 수리센터의 사장이지만 사장답지가 않다. 카메라 수리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수십년 넘게 카메라를 만지고 다듬고 했지만, 아직도 카메라 수리와 연구에 대한 갈증은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후배들에 뒤지지 않는다.

그가 카메라와 인연이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한 친구가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셔터를 눌러서 피사체와 똑같은 사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그 원리가 무척 궁금하였다. 그 것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것 (카메라)을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카메라 한대 가격이 속된 말로 ‘인사동 집 한 채 값’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워낙 고가(高價)였던 시절이었고, 카메라도 흔하지 않았다. 또한 카메라를 알고 싶어도 카메라와 수리기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도 없었을 뿐더러 기사자격증 같은 것을 발급하는 기관도 없었다.
60년대 남대문시장에는 TV수리기술학원, 시계수리기술학원, 사진학원, 카메라수리기술학원 등이 있기는 했지만 수강료가 비싼 편이었고, 특히 카메라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 수강자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 기술을 습득하려면 경험을 통해서만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었으므로 결국은 그 바닥에서 어떤 형태로든 오래 버텨온 사람들이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행세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말에 고향인 경기도 양평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하게 된다. 부친이 과거에 면장(面長)을 지내는 등 집안형편은 남보다 비교적 나은 편이었지만, 공부하는 것에는 별 취미가 없어 졸업을 앞두고 무작정 상경한 결과였다. 당시 둘째누나가 결혼해서 서울에 살고 있었으므로 서울에만 오면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왔었지만, 금방 찾지 못하고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겨우겨우 수소문에서 누나를 만날 수 있?다. 판자촌이 서울의 여기저기에 있었던 시절이었고 서울주소라는 것이 일률적으로 돼 있지 않아서 우편배달부도 몇 년 지나야 겨우 관내 주소지를 파악할 정도였던 시절이다.
매형한테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자동차정비소를 소개해 주었다. 몇 개월 동안 기름때 묻히면서 고생을 해 봤지만, 마음속으로 동경해 오던 기술이 아니었다. 당시에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선배들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곁눈질로 배우던 시절이어서 처음부터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추운 겨울에 노천에서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 고역이었다. 내가 배워야 할 기술은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매형의 소개로 남대문시장의 시계수리점에 들어가 시계수리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 당시는 남대문시장이 도매업뿐만 아니라 수리기술에서도 중심지였고, 종업원들이 주인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심부름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1년여를 보내던 중 남대문시장에서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카메라수리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소개로 전부터 하고 싶었던 카메라수리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남대문시장 안에 사무실이 있는데 카메라점을 돌면서 그곳에 수리의뢰 들어온 것들을 모아다가 수리만을 전문으로 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월급은 없었고 선배들과 함께 먹고 잠자리를 제공받는 정도의 대우를 받으면서 기술을 배웠다. 그 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1968년이었다. 비록 용돈수준이긴 했지만 월급을 받기 시작한 것은 3~4년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의 기술 익히는 과정은 들어가자마자 궂은일부터 해야 했었고, 조금 지나서 배우는 것이 부품명칭 외우기와 고장 나서 버려야 할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분해-조립하는 것이 전부였다. 시계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도 정밀기계이고 많은 부속품으로 구성돼 있으므로 부품의 명칭과 위치를 일일이 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본과정이었다. 그러다가 선배가 간단한 것을 고쳐 보라고 하면 그때에야 겨우 카메라를 만져볼 수 있었다. 좀 더 지나게 되면 고장부위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어떤 곳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느냐가 기술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그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수리점의 주인은 그 당시에는 드물게 일본에서 기술을 익혔던 사람으로, 국내에서는 몇 명 안 되는 수준 있는 기술자로 꼽혔다. 그는 군대에 갔다 온 후에도 얼마 동안은 그 수리점에서 일을 했다. 당시에 같이 기술을 배우던 동료들이 모두 4명이었는데, 훗날 한 사람은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카메라A/S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종로에서 카메라판매점을 하고 있다.

전자식카메라는 노출이나 거리조절 등 모든 것을 기계가 알아서 작동하므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잘 나오고 카메라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기계식카메라는 찍고자 하는 피사체에 따라 조리개크기나 셔터속도 등 모든 것을 일일이 조작해야만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사진전문가들이 작품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자동카메라로는 안 되고 기계식 수동카메라로 촬영한다.
수리기술 수준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누가 얼마동안 이 분야에 있었는가를 보고 기술자들끼리는 대충 다른 사람들의 기술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고장난 부위를 한 눈에 알아보고 빠른 시간 내에 완벽하게 고쳐낼 수 있는 능력으로 기술력을 평가받는다. 정지학은 카메라수리기술 분야에서만 30년 넘게 일해 왔으므로 그의 기술은 뛰어난 것으로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이 분야에서 그보다 오래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몇 명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 이 일을 배우면서 느꼈던 애환은 없었느냐고 했더니, 그는 보람을 느꼈던 적도 안타까웠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기계식 카메라의 경우 고장 난 부위를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카메라수리를 의뢰받아 생각지도 않은 곳에 생긴 고장부위를 밤새워 찾아내서 감쪽같이 수리했을 때, 밤잠을 못자고 힘도 들었지만 기술자로서의 자부심 때문에 뿌듯함을 느꼈다. 고장 부위가 제 부품을 끼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부분이면 고장 난 부위를 찾아냈더라도 고칠 수가 없어 무척 실망스럽고 안타까워했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한 번은 라이카M3 기종이었는데, 다른 수리기사가 고치다가, 고치기는커녕 분해한 것을 조립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그냥 보자기에 싸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그것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려서 수리해 냈을 때, 다른 기사가 못 고친 것을 고쳐냈다는 자부심으로 흐뭇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그의 기술수준은 높아 갔다. 이제는 잠깐만 살펴보고도 고장부위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이 분야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10여년 전쯤에 지도를 작성하는 회사에서 독일제 항공촬영 카메라로 촬영하다가 이 카메라가 고장 나서 독일기술자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독일기술자에게 연락을 한 후, 혹시 한국에서 이 카메라를 고칠 수는 없을까 수소문하던 중 그에게 이 카메라를 들고 왔다. 그는 이를 밤새워 고쳤고 수리 후 실기테스트에도 통과되었다. 처음 보는 카메라를 고쳐냈을 때의 희열은 기술자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이리라.

그의 기술력이 소문나자 지금은 보기 힘든 구식 기종의 카메라를 들고 와서 수리를 의뢰하는 단골손님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기종일수록 부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부품이 없으면 정씨는 그것을 직접 깎아 만들어 수리해 준다. 이 작업은 원래의 부품과 똑같아야 하므로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젊은 시절에 같이 기술을 배우면서 친해져서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권00 (52)씨는 그를 아주 성실하고 수리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공부를 하던 것이 벌써 30여년이나 흘러갔다고 회고하는 권씨는, 정지학의 기술 배우는 눈썰미와 실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앞서서 당시에도 자신은 그의 기술력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지금 권씨는 카메라재생기술을 익혀서 외형이 고장 났거나 부서진 것을 수리.재생하고 있는데, 권씨도 30년 동안 익혀온 기술이기에 그에 못잖은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주로 맡아서 수리하는 기종은 독일제 수동카메라 라이카(Leica), 롤라이 (Rollei), 핫셀블라드 (Hasselblad), 콘탁스 (Contax), 독일 코닥 (German Kodak), 포익트랜더 (Voigtlander) 등이다. 그는 수리의뢰가 들어오면 밤잠을 안 자고라도 어떻게든 고장부위를 찾아서 고쳐내는 근성을 갖고 있다. 모두가 외제 카메라이므로 부품을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구형 카메라를 고치러 오는 경우 부품을 다시 만들어 끼우는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 셔터의 저속타임 스피드를 내는 슬로 셔터 뭉치 같은 것은 자기 부품이 아니면 수리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엔 다른 헌 카메라에서 부품을 빼서 갈아 끼울 수밖에 없다. 홍콩이나 미국 일본 등에 부품을 주문하면 구할 수는 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값도 꽤 비싼 편이라고 한다.
그의 기술력이 명동과 충무로에서 인정받게 되자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도 가끔씩 알음알음으로 찾는다. 이제는 그들의 소개를 받고 제법 많은 외국인들이 수리를 부탁해 온다. 단골인 몇몇의 미국 한인목사들과 그들의 소개로 오는 미국교포들이 주로 찾아온다. 한국 사람들의 손재주가 좋아서인지 우리의 카메라, 특히 수동카메라 수리기술력은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서있다. 따라서 잘 고치면서도 수리비용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수리점을 찾아오는 것이다.

카메라 중에서도 독일제 카메라는 특히 기계식 고급기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핫셀, 라이카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요즘 이런 기종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에 갖고 싶어 했던 기종을 형편이 나아진 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고, 수집가들이 수집품으로 사서 소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독일 카메라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호사가들이 많아지면서 수리의뢰도 자주 들어온다고 한다. 카메라 수집가들은 귀한 물건들을 모아서 애장(愛藏)하고 있고 그것들을 좀처럼 팔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매물로 나오는 구형카메라가 거의 없고, 혹시 나오더라도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수집하는 취미는 돈이 많이 든다.

국내에 카메라 수집가들이 꽤 많다고 하기에 특이하게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단한 정열로 카메라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중의 한 사람으로 15년 전부터 정지학과 거래해 오고 있는 박모씨를 꼽았다. 70대인 그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기종의 카메라로부터 최근에 나오는 카메라까지 골고루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대화하고 그것을 뜯었다가 다시 맞추기도 하는 등 그의 카메라에 대한 정성이 대단해서, 보관실에는 가족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도 희귀한 카메라를 보면 비싼 값이지만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가 소장한 카메라가 수백 점은 될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그 중에는 초창기 카메라들도 많이 있어 카메라역사를 알아보는데 매우 귀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한사람은 그가 ‘카메라연구가’라고 이름붙인 김강위 (78)씨이다. 6.25때 라이카를 산 후 애호가가 돼 버린 김씨는 고장 난 구형 카메라를 일부러 사 가지고 와서 자신이 직접 수리하기도 하는 등 카메라에 관련된 여러 가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것은 그에게 조언을 받는다. 라이카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스스로 분해한 사진기를 다시 맞출 수 없으면 싸가지고 와서 그가 고치는 과정을 아주 꼼꼼히 살피고, 수리가 완료되면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성능을 비교하기도 한다.
김씨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헌 라이카 카메라를 사 가지고 와서 그에게 가져온다. 그러면 그 중에서 쓸 수 있는 부품들을 모아 하나의 완전한 카메라를 만들어 준다. 몇년 전에 같은 모델의 헌 라이카 카메라를 아주 싼 가격으로 홍콩에서 1개, 미국에서 1개, 남대문시장에서 1개를 구해서 조립한 라이카가 있는데, 조립하고 나니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아주 소중하게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
김씨와 그가 만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다. 고장 난 카메라를 가지고 수소문 끝에 찾아온 김씨는 그의 기술력을 단번에 알아봤다고 했다.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러 보더니 소리만 듣고도 이물질이 끼었다면서 카메라를 분해했는데, 정말로 셔터 뒤쪽에 필름쪼가리가 걸려 있었다. 김씨는 그 전에는 주로 일본에서 카메라를 수리해 왔는데, 이때부터 김씨는 그의 수리점을 단골로 이용한다. 김씨는 그가 파손된 라이카의 고무셔터 막을 일본제 120㎜ 카메라 셔터고무를 잘라서 재생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이것은 고도의 카메라수리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면서, 그런 기술력을 가진 사람은 일본에도 몇 명 없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 해도 완벽하려면 ‘플랜지 백(Flange Back)' (렌즈부착 기준면, 즉 플랜지에서 필름 면까지의 거리)이 일정해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라이카 M3의 경우 그 거리가 27.8㎜인데 허용오차가 1백분의1㎜라는 것이다. 상-하, 좌-우의 모든 방향에서 이 거리가 정확하게 나와야 사진이 잘 찍히는데, 이 정도로 정밀하게 수리하는 기술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구식의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려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롤라이 110A이나 110E, 미놀타 472 등은 110㎜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런 필름을 구할 수 없어 일본이나 미국 등에 신청해야 하고, 현상할 때도 마찬가지로 외국에 필름을 보내야 한다. 지금은 값싸면서도 줌(Zoom) 기능, 플래시 장착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여 셔터만 누르면 사진이 잘 찍히는 전자식 카메라가 많이 보급돼 있고, 즉시 전송도 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도 언론사를 비롯하여 그 영역을 빠른 속도로 넓혀 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는 가격이 비쌌고 해상력도 떨어져 인기가 없었으나,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해서 사진도 선명하고 카메라가격도 계속 하락하고 있어 일반인들도 많이 구입한다.
그러나 이처럼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잘 찍히는 자동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 찍는 기술은 떨어지고 있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기 보다는 생일.입학.졸업.회갑 등 기념일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 찍기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이나 가족의 기록사진은 많이 찍어 보관하고 있지만 공적인 기록을 위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서울의 변화상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의 종로나 청계천, 광화문거리의 모습과 60년대와 80년대의 모습,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한다는 것이다. 명동의 거리에 나가 보면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그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는 그가 가치 있는 기록사진이나 자료사진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카메라 수리 기술자들이 경력과 기술력 등을 감안하여 서로 인정하는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카메라기기기사협회’가 있는데, 전국의 회원이 60여명이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서 기술발전을 위한 세미나도 열고 정보도 주고받는 등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 카메라기사협회 회원들이 ‘96아시안게임 때와 ’88서울올림픽이 열릴 때는 사진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카메라 안전요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올림픽이 열릴 때 선수들이 테러로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가끔 있었고, 요주의 위험단체가 입국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정보기관에서 협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기자나 일반인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구실로 아무에게나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데, 그 안에 무기를 숨길 수도 있으므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험을 예방하는 임무가 카메라안전요원들이 하는 일이었다. 협회에 소속된 기사들이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의 입구에 지켜 서서 관람객이나 사진기자들이 휴대하고 입장하는 카메라를 일일이 육안으로 검사하고 체크했는데, 회원이 많지 않아서 이틀마다 나가야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뒤따라 개최되었던 장애자올림픽에서도 봉사를 했다. 국가적인 큰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봉사했다는 뿌듯한 긍지를 느꼈던 때였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그는 사진작가들과도 교분을 유지하고 친목도 다지고 있다. 사진작가협회에서 촬영대회가 있으면 카메라수리 기사들이 초청을 받아 같이 간다. 만일 촬영대회중에 가지고 간 카메라가 고장 나면 즉석에서 수리해 주기 위한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가끔 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출품했던 사진이 1993년에는 ‘잘 찍은 사진’으로 선정되어 사진작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하는 일이 정밀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신경을 집중시켜 고장부위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어떤 때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이므로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정씨는 등산을 가거나 가끔은 배드민턴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두 주일마다 한 번꼴로 등산을 가는데, 그때는 주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가기를 좋아한다.
그의 힘을 빼는 또 한 가지는 일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현실은 자동카메라가 일반화되고 있는데도 구형의 독일제 카메라만을 취급하고 있는 그는 일반인들이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여 수리비가 무조건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정밀한 수리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카메라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지금은 카메라 값이 많이 내려서 집집마다 한두 대씩 있는 필수품이 되었지만, 취급방법을 잘 몰라서 자동용 건전지만 방전돼도 카메라가 고장 났다고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가, 실제로 못쓰게 돼서 버리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 것도 수리점에 맡겨서 수리하면 거의 새것처럼 된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 수리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이제는 숙련된 수리기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마음 아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구식카메라나 현재 단종 된 카메라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있을까. 그도 개인적으로는 같이 일하면서 틈틈이 기술을 전수하는 등 내심으로 공들이는 후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수리기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글; 박인환 전 조선일보기자)


extract from 한 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김유경, 눈빛, 2001.09.10, 287p, ISBN : 8974099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