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3월 10, 2007

이번 학기 시간표


No pain, no gain.

이것으로 이번 학기는 시체나 다름없음
포스팅하기도 힘들겠는걸..

목요일, 3월 01, 2007

우케미 정리

일본어강사인 이치카와 야스코씨의 강좌중 우케미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해봤습니다. 국내에서 가르치는 스타일과 다르게 우케미를 직접과 간접용법 두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매우 명쾌한 분류법이라 생각됩니다.

보다 많은 내용 http://homepage3.nifty.com/i-yasu/


●受身表現(受動態)우케미표현(수동태)

「ホセがカルメンを殺す」のような能動文と、「カルメンがホセに殺される」のような受身文はどう違うのでしょうか。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다"와 같은 능동문과 "카르멘이 호세에게 죽는다"와 같은 수동문은 어떻게 다를까요?

私達が物事について述べるとき、行為者の側から「誰が何をした」と述べる場合と、視点を行為を受けたほうに移し、被行為者(被害者)の側から述べる場合があります。
우리들이 여러가지 일에 대해서 말할때 행위자측에서 "누가 무엇을 했다"라고 얘기하는 경우와, 시점을 행위를 당한쪽으로 이동시켜 피행위자(피해자)의 측에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受身表現は後者の、被行為者(被害者)の側に視点を置いて述べる文法形式です。
수동표현은 후자의 피행위자(피해자) 쪽에 시점을 두고 얘기하는 문법형식입니다.


日本語の受身(受動態)は大きく、直接受身と間接受身に分けられます。直接受身というのは、「ホセがカルメンを殺す」から「カルメンがホセに殺される」が表現できるように、主語(カルメン)が誰か(ホセ)によって直接的な動作・行為を受ける受身のことを言います。
일 본어의 수동은 크게 직접수동(直接受身)과 간접수동(間接受身)으로 나눠집니다. 직접수동이라는 것은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다"에서 "카르멘이 호세에게 죽다"로 표현할수 있도록 주어(카르멘)가 누군가(호세)에 의해 직접적으로 동작과 행동을 당하는 수동을 말합니다.

一方、間接受身は「子供が私のパソコンをこわす」から「私は子供にパソコンをこわされる」が表現できるように、主語(私) が誰か(子供)によって、直接的な動作・行為を受けたのではないが、パソコンをこわされることによって、間接的に何らかの影響(多くの場合被害)を受ける ことを表す受身です。
한편 간접수동은 "애기가 나의 PC를 망가뜨리다"에서 "나는 애기에 의해 PC가 망가져버렸다"(역주-이건 한국어로 직역 불가)처럼 주어(나)가 누군가(애기)에 의해 직접적인 동작이나 행위를 당한것은 아니지만, PC가 부숴져버린것에 의해 간접적인 무엇인가의 영향(대체로 피해)을 입은것을 나타내는 수동입니다.

●直接受身 직접수동

直接受身では、用いられる動詞は他動詞で、(1)(2)のように、動作を行う人・ものは「に」で表されます。
직접수동에서 쓰이는 동사는 타동사로 (1)(2)처럼 동작을 행하는 사람, 물건은 조사 「に」를 씁니다.

 (1)兄が弟を殴った。형이 동생을 때리다

      ↓

    弟が兄に殴られた。동생이 형에게 맞다

 (2)夫は彼女を深く愛していた。남편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있었다

      ↓

    彼女は夫に深く愛されていた。그녀는 남편에게 깊이 사랑받고 있었다

行う動作が「書く・作る・建てる・発明する・設計する」などのように、何かを創造することを表す動詞では、多くの場合次のように「によって」が用いられます。
행하는 동작이 「書く・作る・建てる・発明する・設計する」처럼 뭔가 창조하는것을 나타내는 동사에서는 많은경우 다음경우처럼 「によって」가 쓰입니다.
 
(3)有名な建築家がこのビルを建てた。유명한 건축가가 이 빌딩을 세웠다

      ↓

    このビルは有名な建築家によって建てられた。이 빌딩은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세워졌다

また、(4)のように原料などは「から」が用いられる。
또한 (4)처럼 원료등은 「から」가 쓰입니다.

 (4)ワインはぶどうから作られる。와인은 포도에서(로) 만들어진다

また、特に動作を行う人・ものを表す必要がない場合(行為者のない受身文)は、「~に/によって」が省略されます。
또한 특별히 동작을 행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표시가 필요없는 경우(행위자가 없는 수동)은 「~に/によって」가 생략됩니다.

 (5)輸入品には高い関税がかけられている。수입품에는 비싼 관세가 물려진다

 (6)この日本家屋は100年前に建てられたものだ。이 일본가옥은 100년전에 지어진것이다

 (7)彼の表情から疲労の色が感じられた。그의 표정에서 피로한 색이 느껴진다

●間接受身 간접수동

間接受身というのは英語などにはない受身で、主語が、ある事態・事件で迷惑をこうむったという含みを持ちます。そのため迷惑受身とも呼ばれることが多いです。
간접수동이라는 것은 영어에는 없는것으로 주어가 어느 사태, 사건에 피해를 입은경우가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迷惑受身(멋대로 번역-피해수동)이라고도 부릅니다

用いられる動詞は他動詞と自動詞の両方で、迷惑をこうむるもの(主語)は話し手であることが多いです。文の形としては、(5)(6)のように、「(主語)が/は(誰か)に(主語の所有物など)を~(さ)れる」という形をとります。
사 용되는 동사는 타동사와 자동사 양쪽으로 피해를 받는것(주어)는 말하는 쪽일 경우가 많습니다. 예문 (5)(6)처럼 「(主語)が/は(誰か)に(主語の所有物など)を~(さ)れる」(주어)가/는 (누군가)에게 (주어의 소유물을) 뭐뭐 되버리다

 (5)子供が私のカメラをこわした。애가 내 카메라를 부쉈다

      ↓

    私は子供にカメラをこわされた。나는 애에게 카메라를??? (한국어로 직역불가)

 (6)電車の中で誰かが私の足を踏んだ。전철안에서 누군가 내 발을 밟았다

      ↓

    私は電車の中で足を踏まれた。나는 전철안에서 발을 밟혔다

(5)(6)では動詞が「こわす」「踏む」のように他動詞が用いられていますが、(7)のように自動詞で受身表現がなされる場合もあります。
(5)(6)에서 동사가 부수다, 밟다처럼 타동사가 쓰이지만 (7)처럼 자동사가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7)私の子供が一晩中泣いた。내 애가 밤중에 울었다

      ↓

    私は一晩中子供に泣かれて、困った。나는 밤중에 애에게 ???(한국어 직역 불가), 고생했다

(7)のような間接受身は日本語独特だと思われますが、特に最近は実際にはあまり使われていないという報告もあります。
(7)처럼 간접수동은 일본어에만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실제회화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는듯 합니다.


  外国人学習者には、間接受身の概念が理解しにくいようです。学習者だけではなく、日本人ネイティブである私自身も日本語教師1年生のとき、間接受身という ものがよくわかっていないようでした。次の(8)を(8)'のように訳して、外国人学習者が笑っている意味がよくわからなかったという経験があります。
외 국인 학습자에게는 간접수동의 이해가 어려운듯 합니다. 학습자 뿐 아니라 일본인 네이티브인 본인조차 일본어교사 1년차때는 간접수동이라는 것이 잘 이해가 안갔었습니다. 다음의 (8)을 (8)'처럼 바꿔 외국인 학습자가 웃는 경우 잘 이해가 안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8) 私は弟にケーキを食べられた。나는 동생에게 케익을 먹혀버렸다

 (8)' I was eaten cakes by my younger brother.

これでは「私」が「弟」に食べられてしまうことになりますね。
이렇게 바꿔버리면 내가 동생에게 먹혀버린것으로 되는군요

また、外国人学習者は、迷惑を受ける人を主題として文頭に出すということがなかなかわからず、(9)(10)のような文を作ってしまいがちです。
또한 외국인 학습자는 피해를 입는사람을 주제로 문장을 만드는것을 어려워하므로 (9)(10)같은 문장을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9) 私のカメラは弟にこわされた。

(10) 私の靴が女の人の靴に踏まれました。

正解はそれぞれ、「 私は弟にカメラをこわされた。」「私は女の人に靴を踏まれました。」となります。
정답은 각각 「 私は弟にカメラをこわされた。」「私は女の人に靴を踏まれました。」가 됩니다.


 (7)で紹介した自動詞の受身を学習者に教える必要があるのかないのかについては、議論のあるところです。日本人でも「一晩中子供が泣いて、困った。」と言うことが多いかもしれません。
(7)에서 소개한 자동사의 수동을 학습자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말이 맣습니다. 일본인이라도 「一晩中子供が泣いて、困った。」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次の(11)(12)でも「販売員が来て困った」「雨が降って、ずぶ濡れになった」と言うことが多いと思われます。
다음의 (11)(12)에서도 「販売員が来て困った」판매원이 와서 곤란해졌다「雨が降って、ずぶ濡れになった」비가와서 젖어버렸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1) きのうは、しつこい訪問販売員に来られて困った。어제는 끈질긴 방문판매원에게 옮을 당해? 곤란했다

 (12) 雨に降られて、ずぶ濡れになってしまった。비가 오는것을 당해? 젖어버렸다



 将来、自動詞の受身を取り上げない教科書も出てきてくるかもしれません。仮に授業で取り上げる必要があっても、理解することに重点を置いて指導するのもひとつの考え方だと思われます。
앞으로는 자동사의 수동부분이 없는 교과서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수업에서 가르칠 경우라도 이해할수있도록 가르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最後に受身形の活用を示しておきます。
마지막으로 수동의 활용

Ⅰグループ動詞(5단동사)
書く  書かれる
飲む  飲まれる
呼ぶ  呼ばれる     
とる とられる
使う  使われる
話す 話される

Ⅱグループ動詞(상1단, 하1단동사)
食べる  食べられる
見る    見られる

Ⅲグループ動詞(か변격, さ변격동사)
くる   こられる
する   される

금요일, 2월 23, 2007

발음의 중요성(2)

이해하기 쉬운 음성:어문학사(よくわかる音声:アルク)의 5장 1과를 요약 인용하고, 나 개인의 생각도 첨가해 정리해본다. 일본어뿐 아니라 어느 언어라도 다 해당되는 얘기라 생각한다.

왜 음성학은 등한시 되는가?

"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알 수 없다 ", "무엇을 어디까지 가르치면 좋을지 알 수 없다", "적당한 교재교구가 없다", 바로 이것이 강사측의 입장이자 진실이다. 더우기 「月」-「好き」「角」-「カード」「桃」-「腿」등 단음, 특수박, 악센트의 미니멀페어(단어의 최소대. 비교발음 훈련에 자주 사용된다)수업에 관해서도 "미니멀페어의 수업은 단조롭고 학습자가 지루해 하므로 가르치고 싶지 않다", "미니멀페어수업은 학습자가 긴장하므로 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학습자가 싫어하니까 한자수업은 하지 않는다, 문법도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오히려 강사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거나 긴장하지 않도록 나름의 수업방식을 연구해 학습의욕을 높이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잘못된 발음은 의도하지 않은 "내용"까지 전달해 버린다

1. 만약 松田(matsuda)를 찾는데 つ를 정확히 발음하지 못해 일본인이 듣기에 masuda로 들린다면 松田가 아닌 増田를 찾는것으로 오인 될 것이다.

2. 만약 笠井(kasai)를 찾는데 첫박의 /ka/를 유기음 ㅋ(/kha/) 으로 발음한다면 일본인이 듣기에는 화가나서 찾고있는듯한 인상을 준다

3. 일본어의 /ウ/는 원순모음 /u/가 아닌 /w/이다. 도쿄방언(표준어)에서 /ウ/단을 /u/로 발음할때는 불만이 있다는 늬앙스를 전달할 때이다. 한국어처럼 항상 /u/를 사용한다면 언제나 불만에 차있다는 늬앙스를 전달하게 될 수도 있다

4. 「私の鉛筆です」를 /ワタシノエンピチュデス/처럼 발음한다면 어린애나 혀가 짧은 사람같다는 인상을 준다.

영어의 경우... 아프다는 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I'm ill이라고 하고싶지만, 이것을 I'm eel로 발음해 버리면 "나는 뱀장어"가 되어버린다.

잘못된 인터내션도 의도하지 않는 늬앙스를 전달한다

A:その人、敦子さんですよ。
B:敦子さんですか。

여 기에서 B의 인터내션은 평조의 /敦子さんですか→/나 단승(短昇)의 /敦子さんですか↗/가 보통이다. 만약 길게 고저차를 붙여 /敦子さんですか_↗/로 말한다면 싫어한다는 인상이 전달되버린다. 감정적평가가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다면 발음이 틀린것 이상으로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통하기만 하면 OK?

서 로 다른 사투리를 쓰는 두명이 대화를 한다면 피곤해지는 경우가 있다. 일단 의미의 전달은 되었으니까 상관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말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부담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외국어학습에서 "의사전달"을 최종목표라 생각, "서로 뜻만 통하면 OK"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 "의사전달"이 매끄럽게 이뤄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무엇이 영향을 끼치는가?

미국에서 외국학습자의 영어발음에 어떤것들이 관여하는지 연구된적이 있다고 한다. 중요요소로는 "모국어", "발음모방능력", "재미기간", "발음에관한 관심도"의 4개였다고 하는데, 의외로 "영어학습기간"과 "발음교육의 유무"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내에서)일본어공부(문법, 독해, 한자, 청해...)를 아무리 오래해도 발음이 향상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것이다. 발음교육의 유무가 큰 영향을 주지 못했으므로 발음공부를 할 필요도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적어고 꾸준히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모방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수련하는것이 정확한 발음에 다가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발음의 중요성(1)

일본어를 잘 한다는것은 어떤의미일까? 한자 1945자의 완벽한 암기? 우케미, 경어등 어려운 문법의 마스터? 사전이 필요 없을정도의 완벽한 어휘력? 여러가지 측면에서 실력을 쌓아야만 일본어를 잘 한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면서도 중요하지 않는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발음"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어에만 한정되는 내용이 아니다.

작 년 여름, 우연히 한일교류 채팅사이트에서 한국에 거주중인 일본인과 채팅 후 그것이 오프모임으로 이어져 최근까지 10 수명의 일본인들과 꾸준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인들의 한국어 실력은 대체로 좋지 않았으므로 내쪽에서 일본어로 얘기를 했기에 부정확한 한국어를 듣는 기분이 어떤건지 별로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동남아노동자를 위한 방송(MWTV)의 개국 1주년 녹화영상을 보게 되었고, 퍼펙트한 문법이나 외국인에게 어려울것이라 생각되는 구어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으로는 발음의 어색함이 전혀 커버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동안 나의 엉성한 발음을 들어온 일본인들의 느낌도 별다를게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뒷통수를 얻어맞은듯한 느낌이다.

모국어의 간섭현상은 외국어 학습에서 엄청난 문제가되는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일본어 학습시 틀리기 쉬운 예를 들자면, 악센트가 없는 모음이 애매하게 되는 현상(예-요코하마>여커헤머), 악센트가 있는 모음이 길어지는 현상(예=도코>도오코)등 서양인의 한국어에서도 자주 보이는 버터맛 발음이 나오는데 이정도면 알아듣기가 괴로울거다. 물론 나의 발음은 일본인에게 충분히 통한다.

나 뿐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인들의 일어발음은 큰 문제없이 일본인에게 통할것이다. 다행히도 한국어와 일본어의 발음이 그나만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3~6개월 정도 배운 일본인들의 한국어발음은 한국에서 몇년정도 거주한 방글라데시인, 네팔인의 발음보다 정확하니 아마 틀림없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대학에서 영어시간에 어떤 교수는 발음보다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며 아인슈타인의 독일어억양 영어를 갖고 시비를 건 사람은 없다고 했다. 발음에 신경을 쓰는것보다 전달하려는 내용 그 자체와 문법(정확히는 작문)에 신경을 쓰라는 얘기이다. 일견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아인슈타인이기 때문이다! 말이라는건 단지 의미만 전달하는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른 목소리, 억양, 말투 등에서 생각 이상으로 내용외의 많은것이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만큼은 어쩔 수 없겠지만 외국어의 경우 깨끗하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면 어눌해보인다는 인상을 주는것을 막고 스마트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것이다.

문제는 일본어를 포함한 어느 외국어라도 대체로 음성론이 중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외국어 학습자들에게 공통된 현상이겠지만 발음은 대략 한국어의 음가중 비슷하다고 생각되는것으로 마음대로 대체해버리고 일단 문법과 독해부터 실력을 키우게 될거다. 하지만 이런식의 공부법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霧와 義理를 한국어 발음으로 대체해 둘 다 "기리"라고 외어버리면 글로 쓸 경우 어느쪽에 탁음이 붙는지 헷갈려버린다. 만약 "키리"와 "기리"라고 외어버리면 어디에 탁음을 붙이는지 헷갈리지는 않겠지만 일본어에는 구분도 없는 유기음과 무기음으로 멋대로 き와 ぎ를 구분해버리게 된다. 전자도 정확한 발음이 아닌건 매한가지이지만 "기리"라는 발음은 霧에는 상당히 가까우므로 그나마 하나는 맞춘거다. 하지만 후자는 霧와 義理의 발음을 둘 다 틀리고 있다.

이런식으로 멋대로 음가를 대체한 발음은 회화시에도 그대로 나오게 되며, 한번 정해진 발음은 간단히 고쳐지지도 않는다. 단어의 의미나 동사/형용사변화를 잘못외운게 있다면 새로 외우면 그뿐이자만 한번 엉터리로 익힌 발음을 정확히 바로잡으려면 그와 비교도 안되는 노력이 들어간다. 따라서 어렵다고 생각해 발음은 뒤로 돌려버릴게 아니라 제일 처음에 일단 음성론부터 들어가는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어의 발음중 어려운 부분이 많겠지만 먼저 얘기하고 싶은건 유성음과 무성음의 구분이다. 언어에서 구분이 되는 음가는 대립관계에 있다고 하는데 일본어는 알파벳을 문자로 쓰는 언어처럼 유성음과 무성음이 대립한다. 하지만 한국어는 유성음과 무성음이 대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해 듣는게 어렵고 직접 구분해 발음하기도 힘들다. 반대로 일본어는 유기음(ㅋ, ㅌ, ㅍ)과 무기음(ㄲ, ㄸ, ㅂㅂ)의 대립이 없다. 실제로 "카, 까". "타, 따". "파, 빠"의 차이점을 묻는 일본인에게 각각의 발음을 들려줘도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한국인의 감각으로는 "か"와 "が"가 "카"와 "가"에 거의 비슷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일본어 교사라면 한국인은 "か"와 "が"를 구분해 발음하지 못한다고 볼것이다.

한국어에 무성음(청음)과 유성음(탁음)을 구분해 다른 어휘로 생각하는 것은 없으므로 한국인은 의도적으로 유성음, 무성음을 내기는 어렵다. 자음이 놓이는 위치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성, 무성의 구분이 생긴다. "아가"와 "가락"에서 똑같은 "가"가 들어가고, 둘 다 같은 음가를 갖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전자는 유성음, 후자는 무성음이다. 한국인이 言語(げんご)를 발음한다면 한국어에서 어두에 유성음이 오지 않으므로 일본인이 듣기에는 "けんご"로 들리게 된다. 그나마 뒤의 語가 ご로 발음되는건 "아가"의 "가"가 한국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유성음으로 발음되는것과 마찬가지로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반대로 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울경우 ㄴ, ㅇ, ㅁ등의 받침에서 고전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일본어에도 ㄴ, ㅇ, ㅁ받침이 있다. 일본어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ん의 뒤에 오는 발음에 따라 ん이 ㄴ, ㅇ, ㅁ받침중 하나로 쓰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ん의 발음이 변화한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선택적으로 구분해 쓰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어 음성론은 시중에 교재가 많지 않지만 "이해하기 쉬운 음성"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저자도 일본인이고 일본인을 대상으로하는 JEES(일본어교육능력검정시험)수험서라(번역본이 아니다. 100%일본어로 되어있다) 내용이 결코 쉽지 않으므로 일본어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싶다.

단지 일본어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목적이거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등 취미를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면 발음같은건 아무래도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인과 대화를 할 일이 많다면 정확한 발음을 공부해보는게 어떨까? 열심히 반복연습을 한다면 자신의 인상이 전혀 다르게 전달 될 날이 올것이다.

よくわかる音声(이해하기 쉬운 음성)의 링크. 책 내용의 일부를 볼 수 있다.
http://www.amazon.co.jp/gp/product/4872349415/ref=sib_rdr_dp/249-1623305-2220350?ie=UTF8&no=465392&me=AN1VRQENFRJN5&st=books

목요일, 2월 22, 2007

물욕 일기 #2 ~CHROMATIC TUNER for Calibration~


사진의 물건이 내가 쓰는 ‘크로매틱 튜너’ 튜너 앞에서 ‘도(Do)’라고 발음하면 ‘도(Do)'위치에 빨간 불이 점등하며 그 음에서 피치의 높낮이를 바늘로 표시해준다. 보통은 기타나 피아노 등의 조율에도 쓰인다.

비싼 가격에도 이 모델로 구입했던 이유는 아날로그 바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바늘 표시는 아주 작은 피치 변화에 둔감해 애매한 감이 있지만 아날로그 바늘은 아주 미묘한 피치의 차이에도 반응을 보여주는 섬세함이 있었으니깐
오카리나를 연습한지 너무 오래되어 이 녀석 앞에서 캘러브레이션을 실시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OTL 확실히 실력이 무뎌졌음
상급의 연주자가 옆에서 1:1 마크로 지적해준다면 압박 좀 받아가며 연습할 수 있어 무척 좋지만 나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크로매틱 튜너'는 정말 유용하다. 아날로그 바늘이 정중앙에서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피치를 유지하면서 캘러브레이션을 실시하는 게 관건인데 기계란 건 언제나 그렇지만 냉정하게 사실을 말해준다. 스승과 달리 잔소리도 안하므로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가!
어찌됐건 대강 캘러브레이션 후에 연습용으로 집어든 곡은 'FINAL FANTASY Ⅷ'의 'Eyes On Me'
연주자의 곡을 듣고 반주를 깐 후 악보를 보며 연습하는데
이런!

악보가 틀렸지 않은가!!
연주자의 곡을 들으며 악보를 전면 수정.. 악보 만든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정말 많이도 틀려있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 결국 연주자의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악보를 완성했더니 밤이 깊어 연습을 더 할 수 가 없다..;;

화요일, 2월 20, 2007

OblivioN


과거 내가 어린 시절 즐겁게 플레이했던 '인터럽트(액션)', '일루젼 블레이즈(슈팅)', '피 앤 기티 스페셜(액션)'을 제작 했던 '패밀리 프로덕션'의 '신봉건' 씨가 새운 '펜타비전'에서 제작한 'DJ MAX' 그리고 최근 발매된 'DJ MAX Portable 2' '신봉건' 씨는 내가 유일하게 그 센스를 인정하는 국내 크리에이터..
'DJ MAX Portable'을 플레이 하다 이 뮤직 비디오가 너무 맘에 들어 포스팅

내가 ‘레오파드’에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



이거랑 '부트 캠프' 때문이다!

최근 블로그의 테마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구글'과 '애플'은 닮은 점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토요일, 2월 10, 2007

ZARD 2?

블로그 상단 중앙의 버튼을 눌러 배경 음악을 중지 시키고 보세요!


'사에구사 유카'.. 내 어린 시절을 일부 물들인 빙 계열 락 그룹 'ZARD'의 아류랄까.. 신형이랄까.. 느낌이 뭔가 비슷하면서도 참신한 구석이 있다.
원래 ‘ZARD’의 코드도 말총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그리고 수수한 옷차림이었으니 이건 어느 정도 의심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이 게시물과 관련된 이전 게시물

목요일, 2월 08, 2007

'마징카이저'엔 '보스'죠!

최근 오랜만에 맞는 여유로움으로 마음껏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이번 달 지나면 이것도 못한다는 생각으로 미친 듯이 불태우고 있다.
군대 가기 전에 반만 깬 '제2차 슈퍼로봇대전 알파'를 잡았다.
로봇 대전 할 때 불타오르는 소위 '남자의 혼'이라고 하는 불타는 마음이야 일본 갔을 때 만난 일본 게이머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건만 나이 먹으니 불타오르기 쉽지 않다.
그냥 의무감에 가깝게 열 올리며 클리어 하고 있었는데
'제42화 공포! 일본 제압작전!! -후편-'을 클리어 하니 '진 겟타 1'과 '마징카이저'를 얻었다.
'마징가'의 '브레스트 파이어', ‘그레이트 마징가’의 '선더 브레이크', ‘겟타 드래곤’의 '겟타 빔'을 한꺼번에 쏘는 '파이널 다이내믹 스페셜(조낸 사기성 필살기)'을 포기하고 그냥 '진 겟타 1'이랑 '마징카이저'를 키우기로 했다.
근데 문제는 ‘마징카이저’에 태울 파일럿!
'진 겟타 1'에야 '료마' 밖에 태울 수 없건만 '마징카이저'에는 태울 수 있는 애들이 너무 많았다.
고민하다가 누군가 이야기한 '마징카이저에는 보스죠!'라는 한마디에 ‘보스보롯트(깡통 로봇)’의 '보스'를 마징카이저에 태우고 ‘그레이트 마징가’의 '테츠야'는 보급 부대 아저씨로 전락 시켜버렸다.
결과는 매우 만족!
주인공은 잘 생겨야 한다는 그릇된 관행을 역행하여 탑승시킨 '보스' 그리고 아저씨 얼굴답게 보급 부대 '보스보롯트'를 조종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테츠야'..
진짜 한동안 은근한 코믹함에 미소 지으며 플레이했다.

목요일, 2월 01, 2007

라이카를 사랑한 남자 #1 ~긴이치 소프트 버튼~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물건..
젠장, 한정컬러라서 겨우 구했다..;;
문제는 맘에 딱 들어서 구입했다기보다 딱히 필 꽂히게 맘에 드는 소프트 버튼이 없어 구입한 물건이라는 것이 문제..
포클의 어떤 분께서 동생에게 부탁해 대량으로 공수해온 것을 운 좋게 구했다.
내 뒤에 이거 못 사서 안달 났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덜덜덜..
우리나라도 최근 그런 경향이 굉장히 많아졌지만 일본인들은 한정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타고난 장돌뱅이들 같으니라고..

월요일, 1월 29, 2007

스노보드를 타고 왔습니다.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로 갔다 왔는데
네 아주 미친 듯이 타다 왔습니다.
겨울에 타는 스노보드보다 신나는 것도 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찾자면 USJ 정도?
정말 그 속도감이랑 스릴에서 오는 아드레날린은 잊을 수 없지요
갔다 와서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온 몸이 다 아프네요 유격 받은 다음날 하고 똑같습니다.

금요일, 1월 26, 2007

생일 선물로 받은 로봇




Paper Craft 즉, 종이(A4용지)로 만들어진 녀석인데 정말 멋짐
역시 선물은 정성이 느껴지는 쪽이 좋다..

수요일, 1월 17, 2007

Death Note의 원조 설정?


?!??


아니면 원래 일본 사신의 전설인가?
이 만화가 Death Note보다 먼저 나왔으니 일단은 이쪽이 먼저..?

화요일, 1월 16, 2007

물욕 일기 #1 ~단파 라디오~





언제 구입한지 기억도 안 나는 단파 라디오.. 외국 방송을 들으려고 전부터 단파라디오 하나 벼르고 있다가 포르쉐 디자인하고 가죽 커버가 맘에 들어 구입한 라디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세관이 검사할 때 양심도 없게 남의 물건이라고 함부로 다룬다는 걸 처음 느끼게 해 준 물건..
대한민국 세관 다 족구 하라 그래!

몇 년 째 써오면서 느낀 점은 기능과 모양새는 독일이지만 짱꼴라 OEM이기 때문에 싼 티가 나는 점 그리고 플라스틱 재질의 외관이 가죽 커버의 고급스러움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점이 단점이다.
이 라디오는 전리층을 반사판으로 이용하는 단파를 캐치하므로 창밖으로 자작 안테나를 설치해 두었는데 낮에는 일본 방송, 영어 방송, 북한 방송(완전 코미디), 아랍 방송? 등등 다 잘 나오다가 밤만 되면 짱꼴라 방송으로 도배가 된다.
나한테 쓸만한 건 일본 방송과 영어 방송뿐이지만..
오토 슬립과 알람(자명종과 라디오 소리 중에 선택) 기능 그리고 디지털 입력 방식이 정말 사용자 위주로 기기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목요일, 1월 11, 2007

카메라 수리 삼십 년 - 정지학

렌즈 마운트의 마지막 나사를 조이는 그의 손등에 파란 핏줄이 드러난다. 1955년 독일 베르닝 (Berning)사에서 만들어진 ‘로보트 로얄 36(Robot Royal-36).’ 세계 최초의 스프링 모터 방식의 필름 와인딩 시스템을 가졌던, 고급스럽고도 다루기 까다로웠던 랜지파인더 카메라다. 몇 십년 넘게 방치돼 꿈쩍도 않던 그 카메라가 정지학의 손에 넘어 왔다. 셔터 막, 셔터 날개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는, 그야말로 폐기상태의 그 카메라가 이제 막 그의 손에 의해 수리가 끝났다. 스프링 모터를 감는다.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찰카닥. 찰카닥. 수 십년을 넘어 그 카메라에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무엇을 보든지 눈썰미가 있어서 손으로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었고, 어떤 때 나이차이가 꽤 나는 형과 어울려 나무판이나 함석조각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할 때면 형보다 더 잘 한다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 공부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공부를 안 했다는 연유는 아니지만, 결국에 가서 택한 직업이 타고난 손재주와 눈썰미를 바탕으로 한 카메라수리 기술이었다. 그로부터 30년. 아직도 서울 충무로의 한 허술한 건물 수평 남짓한 수리실에 앉아 고장 난 카메라를 고치고 있다. 그(52)는 그 수리센터의 사장이지만 사장답지가 않다. 카메라 수리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수십년 넘게 카메라를 만지고 다듬고 했지만, 아직도 카메라 수리와 연구에 대한 갈증은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후배들에 뒤지지 않는다.

그가 카메라와 인연이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한 친구가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셔터를 눌러서 피사체와 똑같은 사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그 원리가 무척 궁금하였다. 그 것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것 (카메라)을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카메라 한대 가격이 속된 말로 ‘인사동 집 한 채 값’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워낙 고가(高價)였던 시절이었고, 카메라도 흔하지 않았다. 또한 카메라를 알고 싶어도 카메라와 수리기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도 없었을 뿐더러 기사자격증 같은 것을 발급하는 기관도 없었다.
60년대 남대문시장에는 TV수리기술학원, 시계수리기술학원, 사진학원, 카메라수리기술학원 등이 있기는 했지만 수강료가 비싼 편이었고, 특히 카메라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 수강자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 기술을 습득하려면 경험을 통해서만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었으므로 결국은 그 바닥에서 어떤 형태로든 오래 버텨온 사람들이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행세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말에 고향인 경기도 양평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하게 된다. 부친이 과거에 면장(面長)을 지내는 등 집안형편은 남보다 비교적 나은 편이었지만, 공부하는 것에는 별 취미가 없어 졸업을 앞두고 무작정 상경한 결과였다. 당시 둘째누나가 결혼해서 서울에 살고 있었으므로 서울에만 오면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왔었지만, 금방 찾지 못하고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겨우겨우 수소문에서 누나를 만날 수 있?다. 판자촌이 서울의 여기저기에 있었던 시절이었고 서울주소라는 것이 일률적으로 돼 있지 않아서 우편배달부도 몇 년 지나야 겨우 관내 주소지를 파악할 정도였던 시절이다.
매형한테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자동차정비소를 소개해 주었다. 몇 개월 동안 기름때 묻히면서 고생을 해 봤지만, 마음속으로 동경해 오던 기술이 아니었다. 당시에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선배들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곁눈질로 배우던 시절이어서 처음부터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추운 겨울에 노천에서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 고역이었다. 내가 배워야 할 기술은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매형의 소개로 남대문시장의 시계수리점에 들어가 시계수리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 당시는 남대문시장이 도매업뿐만 아니라 수리기술에서도 중심지였고, 종업원들이 주인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심부름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1년여를 보내던 중 남대문시장에서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카메라수리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소개로 전부터 하고 싶었던 카메라수리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남대문시장 안에 사무실이 있는데 카메라점을 돌면서 그곳에 수리의뢰 들어온 것들을 모아다가 수리만을 전문으로 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월급은 없었고 선배들과 함께 먹고 잠자리를 제공받는 정도의 대우를 받으면서 기술을 배웠다. 그 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1968년이었다. 비록 용돈수준이긴 했지만 월급을 받기 시작한 것은 3~4년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의 기술 익히는 과정은 들어가자마자 궂은일부터 해야 했었고, 조금 지나서 배우는 것이 부품명칭 외우기와 고장 나서 버려야 할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분해-조립하는 것이 전부였다. 시계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도 정밀기계이고 많은 부속품으로 구성돼 있으므로 부품의 명칭과 위치를 일일이 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본과정이었다. 그러다가 선배가 간단한 것을 고쳐 보라고 하면 그때에야 겨우 카메라를 만져볼 수 있었다. 좀 더 지나게 되면 고장부위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어떤 곳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느냐가 기술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그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수리점의 주인은 그 당시에는 드물게 일본에서 기술을 익혔던 사람으로, 국내에서는 몇 명 안 되는 수준 있는 기술자로 꼽혔다. 그는 군대에 갔다 온 후에도 얼마 동안은 그 수리점에서 일을 했다. 당시에 같이 기술을 배우던 동료들이 모두 4명이었는데, 훗날 한 사람은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카메라A/S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종로에서 카메라판매점을 하고 있다.

전자식카메라는 노출이나 거리조절 등 모든 것을 기계가 알아서 작동하므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잘 나오고 카메라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기계식카메라는 찍고자 하는 피사체에 따라 조리개크기나 셔터속도 등 모든 것을 일일이 조작해야만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사진전문가들이 작품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자동카메라로는 안 되고 기계식 수동카메라로 촬영한다.
수리기술 수준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누가 얼마동안 이 분야에 있었는가를 보고 기술자들끼리는 대충 다른 사람들의 기술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고장난 부위를 한 눈에 알아보고 빠른 시간 내에 완벽하게 고쳐낼 수 있는 능력으로 기술력을 평가받는다. 정지학은 카메라수리기술 분야에서만 30년 넘게 일해 왔으므로 그의 기술은 뛰어난 것으로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이 분야에서 그보다 오래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몇 명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 이 일을 배우면서 느꼈던 애환은 없었느냐고 했더니, 그는 보람을 느꼈던 적도 안타까웠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기계식 카메라의 경우 고장 난 부위를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카메라수리를 의뢰받아 생각지도 않은 곳에 생긴 고장부위를 밤새워 찾아내서 감쪽같이 수리했을 때, 밤잠을 못자고 힘도 들었지만 기술자로서의 자부심 때문에 뿌듯함을 느꼈다. 고장 부위가 제 부품을 끼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부분이면 고장 난 부위를 찾아냈더라도 고칠 수가 없어 무척 실망스럽고 안타까워했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한 번은 라이카M3 기종이었는데, 다른 수리기사가 고치다가, 고치기는커녕 분해한 것을 조립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그냥 보자기에 싸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그것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려서 수리해 냈을 때, 다른 기사가 못 고친 것을 고쳐냈다는 자부심으로 흐뭇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그의 기술수준은 높아 갔다. 이제는 잠깐만 살펴보고도 고장부위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이 분야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10여년 전쯤에 지도를 작성하는 회사에서 독일제 항공촬영 카메라로 촬영하다가 이 카메라가 고장 나서 독일기술자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독일기술자에게 연락을 한 후, 혹시 한국에서 이 카메라를 고칠 수는 없을까 수소문하던 중 그에게 이 카메라를 들고 왔다. 그는 이를 밤새워 고쳤고 수리 후 실기테스트에도 통과되었다. 처음 보는 카메라를 고쳐냈을 때의 희열은 기술자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이리라.

그의 기술력이 소문나자 지금은 보기 힘든 구식 기종의 카메라를 들고 와서 수리를 의뢰하는 단골손님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기종일수록 부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부품이 없으면 정씨는 그것을 직접 깎아 만들어 수리해 준다. 이 작업은 원래의 부품과 똑같아야 하므로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젊은 시절에 같이 기술을 배우면서 친해져서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권00 (52)씨는 그를 아주 성실하고 수리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공부를 하던 것이 벌써 30여년이나 흘러갔다고 회고하는 권씨는, 정지학의 기술 배우는 눈썰미와 실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앞서서 당시에도 자신은 그의 기술력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지금 권씨는 카메라재생기술을 익혀서 외형이 고장 났거나 부서진 것을 수리.재생하고 있는데, 권씨도 30년 동안 익혀온 기술이기에 그에 못잖은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주로 맡아서 수리하는 기종은 독일제 수동카메라 라이카(Leica), 롤라이 (Rollei), 핫셀블라드 (Hasselblad), 콘탁스 (Contax), 독일 코닥 (German Kodak), 포익트랜더 (Voigtlander) 등이다. 그는 수리의뢰가 들어오면 밤잠을 안 자고라도 어떻게든 고장부위를 찾아서 고쳐내는 근성을 갖고 있다. 모두가 외제 카메라이므로 부품을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구형 카메라를 고치러 오는 경우 부품을 다시 만들어 끼우는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 셔터의 저속타임 스피드를 내는 슬로 셔터 뭉치 같은 것은 자기 부품이 아니면 수리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엔 다른 헌 카메라에서 부품을 빼서 갈아 끼울 수밖에 없다. 홍콩이나 미국 일본 등에 부품을 주문하면 구할 수는 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값도 꽤 비싼 편이라고 한다.
그의 기술력이 명동과 충무로에서 인정받게 되자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도 가끔씩 알음알음으로 찾는다. 이제는 그들의 소개를 받고 제법 많은 외국인들이 수리를 부탁해 온다. 단골인 몇몇의 미국 한인목사들과 그들의 소개로 오는 미국교포들이 주로 찾아온다. 한국 사람들의 손재주가 좋아서인지 우리의 카메라, 특히 수동카메라 수리기술력은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서있다. 따라서 잘 고치면서도 수리비용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수리점을 찾아오는 것이다.

카메라 중에서도 독일제 카메라는 특히 기계식 고급기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핫셀, 라이카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요즘 이런 기종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에 갖고 싶어 했던 기종을 형편이 나아진 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고, 수집가들이 수집품으로 사서 소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독일 카메라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호사가들이 많아지면서 수리의뢰도 자주 들어온다고 한다. 카메라 수집가들은 귀한 물건들을 모아서 애장(愛藏)하고 있고 그것들을 좀처럼 팔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매물로 나오는 구형카메라가 거의 없고, 혹시 나오더라도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수집하는 취미는 돈이 많이 든다.

국내에 카메라 수집가들이 꽤 많다고 하기에 특이하게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단한 정열로 카메라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중의 한 사람으로 15년 전부터 정지학과 거래해 오고 있는 박모씨를 꼽았다. 70대인 그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기종의 카메라로부터 최근에 나오는 카메라까지 골고루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대화하고 그것을 뜯었다가 다시 맞추기도 하는 등 그의 카메라에 대한 정성이 대단해서, 보관실에는 가족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도 희귀한 카메라를 보면 비싼 값이지만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가 소장한 카메라가 수백 점은 될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그 중에는 초창기 카메라들도 많이 있어 카메라역사를 알아보는데 매우 귀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한사람은 그가 ‘카메라연구가’라고 이름붙인 김강위 (78)씨이다. 6.25때 라이카를 산 후 애호가가 돼 버린 김씨는 고장 난 구형 카메라를 일부러 사 가지고 와서 자신이 직접 수리하기도 하는 등 카메라에 관련된 여러 가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것은 그에게 조언을 받는다. 라이카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스스로 분해한 사진기를 다시 맞출 수 없으면 싸가지고 와서 그가 고치는 과정을 아주 꼼꼼히 살피고, 수리가 완료되면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성능을 비교하기도 한다.
김씨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헌 라이카 카메라를 사 가지고 와서 그에게 가져온다. 그러면 그 중에서 쓸 수 있는 부품들을 모아 하나의 완전한 카메라를 만들어 준다. 몇년 전에 같은 모델의 헌 라이카 카메라를 아주 싼 가격으로 홍콩에서 1개, 미국에서 1개, 남대문시장에서 1개를 구해서 조립한 라이카가 있는데, 조립하고 나니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아주 소중하게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
김씨와 그가 만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다. 고장 난 카메라를 가지고 수소문 끝에 찾아온 김씨는 그의 기술력을 단번에 알아봤다고 했다.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러 보더니 소리만 듣고도 이물질이 끼었다면서 카메라를 분해했는데, 정말로 셔터 뒤쪽에 필름쪼가리가 걸려 있었다. 김씨는 그 전에는 주로 일본에서 카메라를 수리해 왔는데, 이때부터 김씨는 그의 수리점을 단골로 이용한다. 김씨는 그가 파손된 라이카의 고무셔터 막을 일본제 120㎜ 카메라 셔터고무를 잘라서 재생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이것은 고도의 카메라수리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면서, 그런 기술력을 가진 사람은 일본에도 몇 명 없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 해도 완벽하려면 ‘플랜지 백(Flange Back)' (렌즈부착 기준면, 즉 플랜지에서 필름 면까지의 거리)이 일정해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라이카 M3의 경우 그 거리가 27.8㎜인데 허용오차가 1백분의1㎜라는 것이다. 상-하, 좌-우의 모든 방향에서 이 거리가 정확하게 나와야 사진이 잘 찍히는데, 이 정도로 정밀하게 수리하는 기술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구식의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려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롤라이 110A이나 110E, 미놀타 472 등은 110㎜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런 필름을 구할 수 없어 일본이나 미국 등에 신청해야 하고, 현상할 때도 마찬가지로 외국에 필름을 보내야 한다. 지금은 값싸면서도 줌(Zoom) 기능, 플래시 장착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여 셔터만 누르면 사진이 잘 찍히는 전자식 카메라가 많이 보급돼 있고, 즉시 전송도 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도 언론사를 비롯하여 그 영역을 빠른 속도로 넓혀 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는 가격이 비쌌고 해상력도 떨어져 인기가 없었으나,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해서 사진도 선명하고 카메라가격도 계속 하락하고 있어 일반인들도 많이 구입한다.
그러나 이처럼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잘 찍히는 자동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 찍는 기술은 떨어지고 있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기 보다는 생일.입학.졸업.회갑 등 기념일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 찍기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이나 가족의 기록사진은 많이 찍어 보관하고 있지만 공적인 기록을 위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서울의 변화상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의 종로나 청계천, 광화문거리의 모습과 60년대와 80년대의 모습,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한다는 것이다. 명동의 거리에 나가 보면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그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는 그가 가치 있는 기록사진이나 자료사진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카메라 수리 기술자들이 경력과 기술력 등을 감안하여 서로 인정하는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카메라기기기사협회’가 있는데, 전국의 회원이 60여명이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서 기술발전을 위한 세미나도 열고 정보도 주고받는 등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 카메라기사협회 회원들이 ‘96아시안게임 때와 ’88서울올림픽이 열릴 때는 사진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카메라 안전요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올림픽이 열릴 때 선수들이 테러로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가끔 있었고, 요주의 위험단체가 입국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정보기관에서 협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기자나 일반인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구실로 아무에게나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데, 그 안에 무기를 숨길 수도 있으므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험을 예방하는 임무가 카메라안전요원들이 하는 일이었다. 협회에 소속된 기사들이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의 입구에 지켜 서서 관람객이나 사진기자들이 휴대하고 입장하는 카메라를 일일이 육안으로 검사하고 체크했는데, 회원이 많지 않아서 이틀마다 나가야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뒤따라 개최되었던 장애자올림픽에서도 봉사를 했다. 국가적인 큰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봉사했다는 뿌듯한 긍지를 느꼈던 때였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그는 사진작가들과도 교분을 유지하고 친목도 다지고 있다. 사진작가협회에서 촬영대회가 있으면 카메라수리 기사들이 초청을 받아 같이 간다. 만일 촬영대회중에 가지고 간 카메라가 고장 나면 즉석에서 수리해 주기 위한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가끔 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출품했던 사진이 1993년에는 ‘잘 찍은 사진’으로 선정되어 사진작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하는 일이 정밀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신경을 집중시켜 고장부위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어떤 때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이므로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정씨는 등산을 가거나 가끔은 배드민턴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두 주일마다 한 번꼴로 등산을 가는데, 그때는 주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가기를 좋아한다.
그의 힘을 빼는 또 한 가지는 일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현실은 자동카메라가 일반화되고 있는데도 구형의 독일제 카메라만을 취급하고 있는 그는 일반인들이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여 수리비가 무조건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정밀한 수리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카메라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지금은 카메라 값이 많이 내려서 집집마다 한두 대씩 있는 필수품이 되었지만, 취급방법을 잘 몰라서 자동용 건전지만 방전돼도 카메라가 고장 났다고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가, 실제로 못쓰게 돼서 버리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 것도 수리점에 맡겨서 수리하면 거의 새것처럼 된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 수리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이제는 숙련된 수리기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마음 아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구식카메라나 현재 단종 된 카메라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있을까. 그도 개인적으로는 같이 일하면서 틈틈이 기술을 전수하는 등 내심으로 공들이는 후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수리기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글; 박인환 전 조선일보기자)


extract from 한 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김유경, 눈빛, 2001.09.10, 287p, ISBN : 8974099527)

금요일, 1월 05, 2007